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육룡이 나르샤/등장인물 (문단 편집) === 왕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5a73c7ee1c99b273f8feccec782642c6e050b7eec4a30071d36ba43f6571e8f.png|width=100%]]}}} || * 우왕 役 (이현배) 32대 고려의 왕 [[우왕]]. >"당신들이 왕을 하라기에 왕을 했어요. 또한 당신들이 놀라기에 향락 속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헌데 이제야 당신들이 정치를 해보라기에 또 하려고 했지. 헌데 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허나 난 당신들이 그리 비교하던 선왕, [[공민왕|공민대왕]]보단 딱 한 가지 나은 것을 보이려 합니다. 과인은 궁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오. 도망 안 칩니다." 악공이 음을 틀리는 실수를 하자 죽이려고 하며[* 칼로 베어 죽이려고 하는데 이 칼에 이미 피가 묻어 있다. 이 악공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기 전에 이미 다른 악공들을 음을 틀린 죄로 죽인 것이다.] 강렬한 인상으로 첫 등장했다. 최영에게서 홍인방, 길태미의 재산의 일부를 내탕금으로 요구한다. 덤으로 이 장면에서 최영에게 홍인방과 길태미의 재산이 왕실의 재산보다 많다며 "[[이게 나라냐|이게 나라입니까]]"라며 투정부리는 건 덤. 굉장히 작은 비중이라서 제작진도 출연시킬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출연시켰는데 역을 맡은 배우가 출생에 대한 우왕의 열등감까지도 잘 표현했다. 최영, 이성계와 함께한 사냥에서 이성계한테 요동 정벌을 명하지만, 결국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최영은 숙청되고 우왕 자신은 폐위되고 말았다. 이후 28화에서 재등장하며 무명과 연계하여 이성계의 암살을 도모하려 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으나, 현재까지 진행된 극의 내용 상 정작 자신이야말로 무명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30화에서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아들까지 폐위되게 만들고, 자신도 이색이 추진한 환궁마저 취소되고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간다. 그후 32화에서 독약을 먹고 죽었다고 얼핏 언급되었다. * 창왕 役 (황재원) 33대 고려의 왕 [[창왕]]. 우왕의 아들로 조민수의 역습과 이성계를 견제하는 이색에 의해 어린 나이에 왕이 된다. 그리고 약 2년 뒤 공양왕을 옹립하려는 이성계 세력에 의해, 아버지 우왕과 함께 신돈의 사생아로 몰려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를 간다. 처음 등장할 때 빼고는 줄창 서럽게 우는 모습만 나오는데,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정치적 능력이나 지지세력도 없어서 더욱 부각되는 모습이다. 선왕인 우왕은 비록 부정할 여지없는 폭군이었지만 나이가 어리진 않았고 최영이라는 강력한 신하라도 있어서 보위를 유지했는데, 창왕의 경우 이성계측의 역성혁명이라는 현 상황을 타개할 능력도 없었고 자신을 보호해줄 유능한 신하조차 없었으며 지지세력도 변변치 않았다. 때문에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하고 고려 왕씨라는 혈통마저 부정당한 채 허무하게 폐위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26.egloos.com/c0205197_568b02fe418e6.jpg|width=100%]]}}} || * 공양왕 役 ([[이도엽]]) >"그전([[우왕]] 치세 이전)에는요? 그전에는 좀 나았습니까? [[공민왕|공민대왕]] 치세 23년 중 앞에 7,8년, 그때 잠깐이었습니다. 공민대왕께서 어디 한구석 부족한 점이 있으셨던 분입니까? 그런분도 못일으키신 나랍니다. 헌데, [[공양왕|저같은 범인]]이 지존의 위를 맡아 [[고려|이 나라]]를 대체 [[조선|어찌하실려구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보위를 이성계와 조민수가 논의 할때 언급되었으며, 27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거대 상단을 운영해 치부한 돈으로 백성들을 구제하는 선량한 왕족, 풍류를 즐기고 무희 [[윤랑]]을 순정으로서 사랑하는 한량 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과거 회군파가 자신을 왕위에 올리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윤랑과 함께 도망쳐 버릴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왕이 되면 그들이 정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 하니 그것도 싫다며 윤랑의 손을 꼭 잡는 모습 등을 보였다. 이에 창왕의 대안으로 그를 생각하고 왔던 정몽주가 그 모습을 보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후, [[정몽주]]는 왕요를 [[고려]]의 사직을 이어갈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고 그를 각성시키고자 한다. 정몽주는 "소생은 선비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합니다. 허니 공께서도 왕실 종친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주십시오."라는 말로서 그가 시국에 대해 나름의 책임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결국 정몽주 주도하에 조성된 폐가입진 정국하에서, 무명에 의해 독침까지 맞게 되는 수난을 겪은 뒤 죽을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려의 왕으로 즉위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왕위에 오르기엔 너무나 평범한 인물이기에 왕위에 오른 다음에 눈에 다크서클이 생길 정도로 초췌해지고 있다. 특히 이성계를 무서워하며 이성계 낙마 이후 그의 세력을 숙청할 때도 '이성계가 살아돌아오면 어쩌지?'라며 겁을 먹고 있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결국 하늘이 내려준 마지막 기회가 물건너 갔으니 어찌보면 자업자득. 자기 역량에 맞지 앉는 직위에 올라 안그래도 약했던 마음은 물론이고 육체적으로도 고생하고 있다. 공양왕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왕이 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가 없다. 하지만 본래 역사와는 달리 의외로 결단력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성계의 낙마 사고를 빌미로 정도전의 심복들을 탄핵하라는 정몽주의 상소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옥새를 찍어버린다. 정몽주가 죽은 이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한결 표정이 가벼워졌다. 정몽주를 역적으로 처단하라는 상소에 옥새를 찍으면서 정도전에게 옥새는 언제 가져갈 거냐고 묻는다.[* 심지어 미묘하게 기대하는 표정도 비친다. 애초에 공양왕은 왕이 되기 싫었고 빨리 물러나고싶은 마음 뿐이였다는 걸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 이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떠나기 전, 자신의 정인이었던 윤랑을 다시 만난다. 이후 그녀와 함께 마지막까지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떠났다.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었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행복한 결말을 맞은 셈일줄 알았으나 39화에서 조준과 정도전이 고려 왕족들을 모두 죽이자고 나섰다. 결국 42화에서 교살 당하고 말았다. [[윤랑]]이 싸우는 인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처형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의 유언장을 전해주는 상인의 표정을 볼 때 아직 유배지에서 왕 대우를 받으며 존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죽기 직전 공허한 표정과 그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는 윤랑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왕들중에선 유일하게 사망 장면이 묘사되었다. * 정비 안씨 役 (김지현) 공민왕의 왕비로 창왕의 대리 청정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